※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인물 관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관람 후 읽는 편이 좋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면 영화의 장면보다 먼저 1990년대 초반 대학 시절의 어느 밤이 생각난다. 친구 집 좁은 방에 서너 명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작은 텔레비전 앞에서 상·하편 비디오테이프를 갈아 끼우며 긴 영화를 끝까지 보던 시간이다. 지금처럼 큰 화면도 좋은 음향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그 밤의 공기까지 이 영화와 함께 남아 있다.

영화 기본 정보
- 한국어 제목: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원제: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C'era una volta in America
- 감독: Sergio Leone
- 개봉: 1984년
- 국가: 이탈리아·미국 합작
- 장르: 에픽 범죄 드라마, 갱스터 영화
- 원작: Harry Grey의 반자전적 소설 《The Hoods》
- 주요 출연: Robert De Niro, James Woods, Elizabeth McGovern, Joe Pesci, Burt Young, Tuesday Weld, Treat Williams
- 음악: Ennio Morricone
- 촬영: Tonino Delli Colli
- 러닝타임: 대표적으로 유럽판 약 229분, 미국 극장판 약 139분으로 알려져 있다.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다.
Sergio Leone는 이 영화를 통해 뉴욕 유대인 갱스터들의 성공담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붙잡고 살아가는 기억과 죄책감, 사랑과 배신의 무게를 다룬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갱스터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간에 관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처음 이 영화를 만났을 때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선명하게 기억하는 방식은 극장이 아니라 비디오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극장 개봉 이후, 긴 러닝타임 때문에 비디오로는 상·하편을 갈아 끼우며 보던 경험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 긴 호흡이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몇 시간 동안 한 방에 앉아 같은 영화를 바라보는 일은 지금 생각하면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빠르게 소비하는 영상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통째로 맡겨야 하는 영화였다. 그래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내게 한 편의 영화인 동시에 젊은 날 친구들과 공유했던 긴 밤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정과 사랑, 배신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
영화는 뉴욕의 유대인 빈민가에서 자란 David “Noodles” Aaronson과 Maximilian “Max” Bercovicz 일행의 삶을 따라간다. 소년 시절의 장난과 범죄는 금주법 시대를 지나며 더 큰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고, 우정은 점차 욕망과 불신 속에서 흔들린다.
누들스는 데보라를 오래 사랑한다. 어린 데보라가 발레를 연습하고, 누들스가 벽 틈으로 그 모습을 몰래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사랑은 끝내 순수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는다. 데보라가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려 할 때, 누들스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그 관계를 파괴한다.
한편 맥스는 점점 더 위험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누들스는 친구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경찰에 정보를 흘리지만, 그 결과 친구들이 죽은 것으로 보이면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뉴욕을 떠난다. 수십 년 뒤 돌아온 누들스는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가 진실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폭력을 쓰고, 복수해야 할 사람에게 폭력을 거부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흔드는 대조는 누들스의 두 선택이다.
누들스는 사랑해야 할 데보라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장면은 관객이 누들스에게 느끼던 연민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그의 사랑은 순수한 첫사랑만이 아니라,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과 분노를 함께 품고 있었다. 누들스는 데보라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자기 손으로 파괴했다.
반대로 마지막에 그는 복수해야 할 맥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맥스는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돈과 인생을 빼앗았으며, 누들스가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노년의 맥스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할 때, 누들스가 총을 들지 않는 선택은 단순한 용서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들스는 맥스를 끝까지 ‘맥스’라고 부르지 않고 ‘베일리 장관’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친구였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맥스가 원하는 마지막 결말을 거부한다. 결국 누들스에게는 복수하지 않는 것이 복수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암시하는 쓰레기차와 열린 결말
맥스가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거대한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맥스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 순간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로 벌어진 일인지, 누들스의 상상인지, 기억이 만들어낸 장면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 모호함 때문에 영화는 더 오래 남는다. 쓰레기차가 지나간 뒤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이미지는 한 인간의 죽음만이 아니라, 누들스와 맥스가 공유했던 과거 전체가 사라지는 장면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우정, 젊은 날의 욕망, 사랑과 배신이 모두 어둠 속으로 쓸려 가는 것 같다.
마지막에 영화가 다시 젊은 누들스의 아편굴 장면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노년의 이야기가 현실인지, 누들스가 죄책감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인지 영화는 끝내 확정하지 않는다. 어느 해석이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진실보다 기억이 어떻게 인간 안에서 바뀌고 버텨지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Ennio Morricone의 음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Ennio Morricone의 음악은 배경음악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기억처럼 작동한다. 영화가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듯, 음악도 단순히 장면을 설명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실과 후회를 먼저 들려준다.
특히 어린 데보라가 춤을 추고 누들스가 그녀를 바라보는 장면에 흐르는 〈Amapola〉는 오래 남는다. 우아하지만 쓸쓸한 선율은 데보라가 누들스에게 가까이 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Deborah’s Theme〉 역시 한 여인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전체를 떠올리게 한다.
팬플루트가 인상적인 〈Cockeye’s Song〉도 현실과 기억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줄거리보다 먼저 음악과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부》와는 다른 갱스터 영화
《대부》가 범죄조직과 가족의 비극을 장중하게 그린 영화라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갱스터의 삶을 통해 기억과 시간, 상실과 후회를 바라보는 작품이다. 성공과 몰락의 서사보다 중요한 것은 누들스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견디는가이다.
소년기, 청년기, 노년기가 뒤섞인 구조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 묻지 않는다. “그 일을 살아남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묻는다. 사랑은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폭력으로 오염되어 있고, 우정은 따뜻한 추억인 동시에 끔찍한 배신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남은 영화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영화만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좁은 친구 방에서 상·하편 비디오를 갈아 끼우며 긴 영화를 끝까지 보았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무엇을 마셨는지는 흐릿하지만, 몇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영화를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선명하다.
영화 속 누들스가 평생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듯, 나 역시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대학 시절의 어느 밤으로 돌아가게 된다. 데보라가 춤을 추던 모습, 누들스가 벽 너머에서 바라보던 시선, 맥스가 사라진 뒤 지나가던 쓰레기차, 그리고 Morricone의 애잔한 음악이 그 좁은 방의 풍경과 겹쳐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단순한 갱스터 영화가 아니다. 사랑했지만 사랑을 지키지 못한 사람, 친구를 구하려다 평생 배신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끝없이 되돌아보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했던 젊은 날의 한 장면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 평점
★★★★☆ 4.5/5
길고 어둡고 불편한 영화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남는 작품이다. 인물의 죄와 모순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잃어버린 시간의 슬픔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든다.
참고한 정보
- Wikipedia,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Wikidata, “Once Upon a Time in America”
- IMDb, “Once Upon a Time in America” releas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