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들쥐》를 끝까지 봤다. 속도감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은 아니지만, 남의 인생을 카피하고 통째로 빼앗는다는 설정이 다음 회를 계속 누르게 했다. 10부작이 크게 지루하지는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다.

2026년 8월 28일 공개된 《들쥐》는 김홍선 감독이 연출하고 이재곤 작가가 극본을 맡은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류준열, 설경구, 이규형이 주요 인물로 출연하며, 동명 카카오웹툰과 ‘손톱 먹은 들쥐’ 설화를 바탕으로 이름과 얼굴, 삶을 빼앗긴 소설가 문재의 추적을 그린다.
※ 이후 내용에는 결말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내 인생을 나보다 잘 사는 사람
가장 무서운 대목은 신분증 한 장이나 이름만 도용당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 내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진짜인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내 삶을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마저 그를 진짜라고 믿는 순간, 얼굴과 기억만으로는 자신을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나라는 사실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얼굴, 기억, 타인과 쌓아온 관계 가운데 하나라도 빼앗기면 정체성은 흔들린다. 《들쥐》는 이 불안을 인생을 되찾으려는 추적과 복수로 끌고 간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에서 배우들의 표정과 감정 변화도 제 몫을 했다.
《리플리》보다 복수극에 가까웠다
남의 삶을 차지한다는 소재 때문에 영화 《리플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작품이 향하는 곳은 다르다. 《리플리》는 타인의 삶을 욕망한 사람이 그 신분까지 가지려는 데서 출발한다. 《들쥐》는 빼앗긴 삶을 되찾겠다는 분노가 앞선다.
《리플리》의 중심에 욕망과 파멸이 있다면, 《들쥐》의 중심에는 상처와 복수가 있다. 같은 신분 탈취를 다루면서도 어느 인물을 따라가게 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방향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문재의 억울함을 따라가며 그의 복수에 쉽게 마음을 얹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가 바뀔 때
후반으로 갈수록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기가 어려워진다. 상처받은 사람이 복수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선을 넘는다. 문재가 이전에 저지른 일과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병과 과거의 트라우마는 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도 피해를 지워주지는 못한다.
보다 보면 결국 “둘 다 나쁜 놈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도 누군가에게는 피해자였던 구조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선한 인물이 악인을 응징하는 복수극보다 한번 시작된 상처가 사람들을 함께 망가뜨리는 피카레스크에 가깝게 보였다.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복수가 허용되지는 않는다. 복수가 시작된 원인과 먼저 남겨진 책임 역시 외면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편하게 응원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모호함이 《들쥐》에서 가장 흥미로웠다.
기억 왜곡은 반전보다 혼란을 남겼다
후반부에 공황장애 약물 과다 복용 등이 문재의 왜곡된 기억과 연결되는 설정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주인공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장치는 미스터리에서 자주 쓰인다. 초반부터 단서가 충분했다면 마지막에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어느 장면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왜곡인지 다시 따져야 하는 혼란이 더 컸다. 중요한 반전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라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동안 본 장면을 새롭게 이해하게 만들 만큼 설득력 있게 쌓이지는 않았다.
욕설과 10부작의 길이
욕설도 필요 이상으로 반복됐다. 거친 인물과 극단적인 갈등을 표현하려는 선택이겠지만, 비슷한 욕설이 이어지면서 대사의 힘이 오히려 약해졌다. 필요한 순간에만 썼다면 분노와 긴장감이 더 또렷했을 것 같다.
10편을 보는 동안 크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 보고 나니 6부작 정도로 압축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남았다. 중간의 비슷한 갈등과 의심을 덜어내고, 인생을 빼앗기는 초반과 진실이 뒤집히는 중반, 복수가 몰아치는 후반을 조밀하게 붙였다면 스릴러의 밀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재미와 아쉬움 사이, 3.5점
《들쥐》는 소재와 배우들의 연기로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선인과 악인의 자리가 흐려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기억 왜곡의 설득력과 잦은 욕설, 다소 긴 구성은 점수를 깎았다.
개인 평점은 ★★★½☆ 3.5/5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깔끔하게 판정하기는 어렵다. 그 답을 쉽게 주지 않았다는 점이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한 이유였다.
작품 정보 참고: Netflix 공식 작품 페이지, Netflix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