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은 죽지 않았다, 다시 듣는 스콜피온스와 Gold Ballads

요즘 다시 스콜피온스(Scorpions)의 노래를 듣고 있다. 1965년 독일 하노버에서 시작한 밴드의 역사는 60년을 넘어섰고, 1948년생인 보컬 클라우스 마이네와 창립 멤버 루돌프 쉥커는 80세를 바라본다. 그래도 음악에서는 그렇게 오래된 밴드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빠지지 않았던 스콜피온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학교에서는 매년 페스티벌이 열렸다.

당시 학교 밴드가 무대에 오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곡들이 있었다. 스콜피온스의 Still Loving You, Holiday 같은 노래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세계의 음악을 손쉽게 찾아 듣던 시대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라 우리가 좋아하던 외국 록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멋있었다.

특히 Still Loving You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곧바로 스콜피온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스콜피온스는 단순한 독일 록그룹이라기보다 학창 시절의 풍경과 함께 기억되는 밴드다.

1980년 맨체스터 아폴로에서 공연하는 스콜피온스
Scorpions, Manchester Apollo, 1980. Photo: Harry Potts / Wikimedia Commons, CC BY 2.0.

강렬한 록밴드, 한국에서는 발라드로 더 사랑받았다

스콜피온스는 분명 하드록 밴드다.

Rock You Like a Hurricane, Blackout, Big City Nights 같은 곡을 들어보면 상당히 강렬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서정적인 곡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Still Loving You, Holiday, Always Somewhere 이후의 Wind of Change 같은 곡이다.

아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스콜피온스의 음악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다시 찾아보니 유명한 곡 외에도 좋은 록발라드가 정말 많았다.  Send Me an Angel ,Lady Starlight,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같은 곡들이다.

특히 When the Smoke Is Going Down은 요즘 다시 듣게 된 곡 가운데 인상적인 노래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 뒤, 조명이 꺼지고 무대의 연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쓸쓸한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 라이브에서도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곤 했다.

화려하게 시작한 록 공연의 마지막에 이 곡이 흘러나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잘 어울린다.

젊을 때 듣는 Still Loving You와 나이가 들어 듣는 When the Smoke Is Going Down은 어쩌면 느낌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음악보다 더 과격했던 앨범 재킷

스콜피온스를 다시 찾아보다 재미있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들의 옛 앨범 재킷은 상당히 과감하다. 아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될 만한 것들도 있다.

《In Trance》, 《Lovedrive》, 《Love at First Sting》 등의 앨범은 선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국가나 유통사에 따라 다른 재킷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Virgin Killer》의 원래 재킷은 지금 보면 단순한 선정성 논란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도발적인 이미지와 가사를 사용했던 밴드에 비해 멤버 개개인은 비교적 큰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오랫동안 활동해왔다는 점이다.

당시의 록스타들이 모두 얌전히 살았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스콜피온스 역시 록의 전성기를 온몸으로 지나온 사람들이다.

그래도 수십 년 동안 밴드가 유지되고, 핵심 멤버들이 지금까지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형도 대단하지만 동생도 대단하다

스콜피온스를 이야기하다 보면 루돌프 쉥커의 친동생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를 빼놓기도 어렵다.

형보다 여섯 살 정도 어린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뛰어난 기타 실력을 보였고, 스콜피온스의 초기 앨범에 참여한 뒤 십 대 후반에 영국의 UFO에 합류했다.

그리고 UFO에서 Doctor Doctor, Rock Bottom 같은 명곡을 남겼다. 이후 Michael Schenker Group(MSG)을 이끌며 또 하나의 독자적인 기타 세계를 만들었다.

마이클 쉥커의 기타는 화려하게 음을 쏟아내기보다 솔로 자체가 하나의 멜로디처럼 들리는 것이 매력적이다.

형 루돌프 쉥커가 스콜피온스라는 밴드를 60년 이상 이끈 사람이라면, 동생 마이클 쉥커는 자신만의 기타 연주로 록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다.

한 집안에서 이런 형제가 나온 것도 참 대단하다.

노장은 죽지 않았다

오랜만에 스콜피온스를 다시 들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것이다.

노장은 죽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에너지와 지금의 에너지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더 어울리는 노래도 있다.

젊은 클라우스 마이네가 부르던 Still Loving You도 좋지만, 70대가 된 그가 수십 년의 시간을 등에 지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록은 원래 젊음과 반항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롤링 스톤스나 딥 퍼플, 그리고 스콜피온스 같은 밴드를 보고 있으면 이제 록은 늙어가는 것조차 음악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르가 된 것 같다.

고등학생 때 학교 축제에서 친구들이 연주하던 Still Loving You와 Holiday. 그때는 그 밴드와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옛날 음악이 그리운 날이라면 오늘은 스콜피온스를 다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Still Loving You와 Holiday만 기억하고 있다면 《Gold Ballads》를 권하고 싶다.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Always Somewhere, Lady Starlight까지 이어서 듣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스콜피온스보다 훨씬 서정적인 밴드를 만나게 된다.

《Gold Ballads》는 1984년에 발매된 다섯 곡짜리 컴필레이션이다. 아래 영상에도 바로 그 다섯 곡이 차례로 담겨 있다.

Scorpions – Gold Ballads: Still Loving You, Holiday, When the Smoke Is Going Down, Always Somewhere, Lady Starlight

대표 이미지: Scorpions live in 2010. Photo: aresauburn™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