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삶을 끝까지 살아간다는 것 ― 《기차의 꿈》 영화와 소설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본 뒤 데니스 존슨의 동명 원작 소설도 읽었다. 영화만 보았을 때도 한 인간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본 듯한 여운이 남았는데, 소설을 이어서 읽으니 그 감정이 조금 더 깊어졌다.

영화가 풍경과 배우의 얼굴로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고독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짧고 건조한 문장으로 그의 생애 안쪽에 더 오래 머문다. 두 작품은 같은 이야기를 향하지만 여운이 도착하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구체적인 결말은 언급하지 않고 그 차이와 감상을 정리해본다.

영화 《기차의 꿈》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 포스터
영화 《기차의 꿈》 포스터
  • 원제: Train Dreams
  • 감독: 클린트 벤틀리(Clint Bentley)
  • 각본: 클린트 벤틀리, 그레그 퀘다르(Greg Kwedar)
  • 출연: 조엘 에저턴, 펠리시티 존스, 윌리엄 H. 메이시 외
  • 공개: 2025년, Netflix
  • 러닝타임: 102분

조엘 에저턴이 연기한 로버트는 20세기 초 미국 서부에서 철도와 벌목 현장을 떠돌며 살아가는 노동자다. 역사를 움직인 위인도 아니고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아니다. 그저 일하고, 사랑하고, 가족을 꾸리고, 예기치 않은 상실을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그의 삶은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소설 《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소설 기차의 꿈 표지
데니스 존슨 《기차의 꿈》 한국어판
  • 저자: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
  • 옮긴이: 김승욱
  • 출판사: 다산책방
  • 출간: 2025년 12월 10일
  • 쪽수: 140쪽
  • ISBN: 9791130672656

소설은 2011년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그보다 앞선 2002년 《The Paris Review》에 다른 형태로 처음 발표됐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한 사람의 생애와 그가 지나온 시대를 압축해 보여준다. 영화를 먼저 보고 읽어서인지 장면 사이에 생략된 시간과 로버트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 감정이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철도를 놓았지만 역사에는 남지 않은 사람

로버트는 철도를 놓고 숲을 베며 미국의 발전 과정에 참여한다. 그가 만든 철길 위로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문명은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오래된 숲은 사라지고 외딴 지역에는 새로운 마을과 산업이 들어선다.

세상의 발전이 로버트 개인의 삶까지 앞으로 이끌어준 것은 아니다. 그는 문명을 건설한 수많은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겪은 사랑과 고통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기차는 계속 달리지만 한 인간의 삶은 그 뒤편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거대한 사건과 유명한 인물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밑바닥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기차의 꿈》은 그중 한 사람의 생애를 천천히 비춘다.

허무보다 부조리에 가까운 삶

처음에는 이 작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허무함’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와 소설을 곱씹을수록 허무보다는 ‘부조리’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로버트는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사랑한다. 삶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의 성실함과 사랑으로도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삶을 뒤흔드는 사건은 어떤 교훈이나 인과관계에 따라 찾아오지 않는다. 노력했기 때문에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원인을 찾고 의미를 붙이며 고통 끝에는 어떤 결론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계는 때때로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인간은 의미를 원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기차의 꿈》이 보여주는 부조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와 소설의 늑대소녀

두 작품의 차이가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늑대소녀의 존재였다.

영화 속 늑대소녀는 현실처럼 생생하면서도 어딘가 꿈에 가깝다. 로버트의 기억과 그리움,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영일 수도 있고, 끝내 작별하지 못한 존재가 잠시 찾아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면의 사실 여부보다 로버트의 마음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소설에서는 늑대소녀가 조금 더 현실적인 가능성을 품는다. 로버트 개인의 환각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소문과 정황이 있고, 당시의 광대한 숲과 외딴 환경을 생각하면 정말 그런 존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늑대소녀는 실제처럼 느껴지는 꿈이다. 소설의 늑대소녀는 꿈처럼 기이하면서도 실제였을 가능성을 남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오히려 로버트의 상실과 그리움을 더 오래 남긴다.

답을 얻지 못한 채 이어지는 로버트의 시간

로버트의 삶에는 우리가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극적인 반전이나 완전한 구원이 없다. 고통을 이겨낸 뒤 큰 성공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모든 상처가 말끔하게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품은 채 계속 살아간다.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자신의 시간을 견딘다. 그 모습은 비극적이지만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어떤 위대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살아온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했고, 노동했고, 상실했으며, 기억했다. 숲의 냄새와 기차의 소리, 사람들과 잠시 나눈 온기와 오래전 가족의 흔적을 간직한 채 끝까지 살아갔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가치를 결과로 평가한다. 얼마나 성공했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겼는지를 기준으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거대한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한 명확한 답도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삶이 가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사람에게 자신의 생은 세상의 전부다.

삶은 때로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하다. 성실하게 살아도 불행을 피할 수 없고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는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언제나 답해주지도 않는다.

《기차의 꿈》은 이름 없이 사라진 철도 노동자의 인생 역시 하나의 거대한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기차는 그를 남겨두고 앞으로 달려가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그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