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백판으로 먼저 만난 음악,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 No. 1 감상

청계천 백판으로 먼저 만난 음악

가끔 어떤 음악은 처음 들었던 장소와 함께 기억된다. 내게 New Trolls의 《Concerto Grosso No. 1》이 그렇다. 이 앨범을 처음 만난 곳은 요즘처럼 클릭 한 번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 청계천 음반 가게에서 구한 백판이었다.

New Trolls Concerto Grosso No. 1 album cover
New Trolls 《Concerto Grosso No. 1》 album cover. Source: Cover Art Archive.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가 많지 않았다. 앨범 소개글을 검색할 수도 없었고,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말도 지금처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표지와 제목, 그리고 음반을 아는 사람들의 짧은 추천이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막상 바늘을 올리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설명은 그다지 필요 없었다. 이것은 그냥 록도 아니고, 클래식도 아니었다. 어딘가 낯설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음악이었다.

지금 다시 Concerto Grosso No. 1 감상을 적는 이유도 그 첫 기억 때문이다. 어떤 앨범은 정보보다 먼저 분위기로 들어온다. 이 앨범은 내게 그런 음악이었다.

Adagio (Shadows)가 남긴 첫인상

특히 2악장인 Adagio (Shadows)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다르게 다가왔다. 느리고 장중한 현악, 비극적인 멜로디, 절제된 보컬이 이어지는데, 그 분위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제목에 붙은 “Shadows”라는 말도 단순한 그림자라기보다는, 사라진 사람이나 지나간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빛이 사라진 뒤에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잔상 같은 것. 그래서 이 곡은 아름답다기보다 먼저 쓸쓸했고, 쓸쓸한데도 계속 다시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중에 이 곡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처음에는 청계천이나 수입음반점, 음악을 좀 찾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던 곡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길에서도 들릴 만큼 익숙한 음악이 되었다. 카페나 거리, 라디오 같은 곳에서 이 선율이 흘러나오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몰래 아끼던 음악이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반갑기도 했고,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대화

《Concerto Grosso No. 1》은 제목 그대로 교향곡이라기보다는 협주곡적 형식을 빌린 앨범이다. “Concerto Grosso”는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 형식에서 온 말이다. 이 앨범에서는 그 구조를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대화처럼 바꾸어 놓았다.

New Trolls라는 록 밴드가 하나의 독주 그룹처럼 앞에 서고, 오케스트라가 그 뒤에서 장중한 무대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 앨범은 단순히 클래식 악기를 곁들인 록 앨범이 아니라, 클래식 형식 자체를 록의 언어로 다시 번역한 작품처럼 들린다.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이 앨범의 음악적 구상에는 Luis Enríquez Bacalov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음악과 클래식 어법에 밝았던 Bacalov는 록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함께 세우는 방식으로 이 앨범의 독특한 틀을 만들었다. 프로듀서 Sergio Bardotti 역시 이 작업의 중요한 인물로 언급된다. 이런 배경을 알고 들으면 앨범의 극적인 구성과 영화적인 분위기가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악장처럼 이어지는 앞부분

앞부분의 구성은 확실히 악장처럼 들린다. 1악장 Allegro는 짧지만 강렬하게 문을 연다. 록 밴드의 에너지와 오케스트라의 긴장이 맞물리면서, 이 앨범이 평범한 록 음반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려준다.

이어지는 2악장 Adagio (Shadows)는 앨범의 정서적 중심이다. 이 곡 때문에 이 앨범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느린 템포, 어두운 선율, 상실감이 담긴 노래가 하나의 장면처럼 펼쳐진다.

3악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는 다시 달라진다. Cadenza - Andante con moto라는 이름처럼, 협주곡에서 독주자가 자신의 기량과 감정을 펼쳐 보이는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클래식의 형식 안에 록 밴드의 목소리가 더 직접적으로 들어온다. 정돈된 오케스트라의 세계와 밴드의 거친 에너지가 서로 밀고 당기며, 이 앨범이 단순한 크로스오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미 헨드릭스에게 바치는 Shadows

그리고 4악장 Shadows (per Jimi Hendrix)는 다시 특별하다. 이 곡은 Jimi Hendrix에게 바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앨범 전체가 클래식과 록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면, 이 4악장은 그중에서도 록의 영혼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

Hendrix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기타 연주자가 아니다. 그는 60년대 말 록 음악이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바치는 곡이 이 앨범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앞선 Adagio (Shadows)가 상실과 고독의 그림자라면, 4악장 Shadows는 조금 다른 종류의 그림자처럼 들린다. 그것은 떠난 사람의 흔적이기도 하고, 한 시대가 남긴 잔광이기도 하다. Jimi Hendrix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음악은 록 음악 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New Trolls는 그 그림자를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그래서 이 곡은 추모곡이면서 동시에 록 음악에 대한 경의처럼 들린다.

그림자라는 말이 오래 남는 이유

이 앨범에서 “Shadows”라는 말이 반복해서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자는 단순히 어둡고 슬픈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흔적, 한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기억, 그리고 음악이 사람 마음속에 오래 남기는 잔상 같은 것이다.

Adagio (Shadows)의 Shadows가 개인적인 상실에 가깝다면, 4악장의 Shadows는 록 음악이 떠나보낸 거대한 인물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처럼 들린다.

특히 Adagio (Shadows)의 마지막 부분에는 Shakespeare의 《Hamlet》의 유명한 독백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 들어간다. 죽음, 잠, 꿈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그 부분은 곡의 분위기를 단순한 이별 노래에서 훨씬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슬픔을 넘어, 존재 자체의 고독과 허무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 곡은 감상적인 팝 발라드처럼 소비되기보다, 들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하고 깊은 그림자를 남긴다.

빈 방에 남은 긴 연주, Nella sala vuota

다만 마지막 곡 Nella sala vuota는 앞의 흐름과 조금 다르게 들린다. 앞부분이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가 함께 만든 협주곡적 세계라면, 마지막 곡은 밴드가 자기들끼리 빈 홀에서 길게 연주하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제목은 “빈 방에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음악도 더 즉흥적이고 더 거칠다. 앞부분의 비극적이고 정돈된 아름다움과 달리, 마지막 곡은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의 긴 호흡과 연주 욕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한 앨범 안에서 결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 차이 때문에 이 앨범은 더 오래 기억된다. 전반부가 극장 무대라면, 후반부는 무대가 끝난 뒤 연주자들만 남은 빈 공간 같다.

지금 다시 들어도 시대를 덜 타는 이유

지금 다시 들어도 이 앨범은 시대를 많이 타지 않는다. 물론 녹음이나 연주 스타일에서는 70년대의 공기가 분명히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매력이다. 요즘 음악처럼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대신 한 시대의 실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다.

클래식을 록으로 끌어오고, 록을 다시 클래식의 구조 안에 넣어 보려는 욕심.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과감하고, 때로는 과장되어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과감함이야말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본질에 가깝다.

내게 이 앨범은 단순히 “Adagio가 들어 있는 앨범”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청계천 음반 가게, 백판, 낯선 수입 음반을 조심스럽게 고르던 시절, 그리고 훗날 그 음악이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장면까지 함께 떠오른다. 한때는 소수의 음악 애호가들이 몰래 나누어 듣던 음악이었고,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선율이 되었다.

마무리 감상

그래서 《Concerto Grosso No. 1》을 다시 듣는 일은 단순한 음악 감상이 아니다. 한 곡이 어떻게 개인의 기억 속에 들어오고, 다시 시대의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Adagio (Shadows)가 있다. 그림자라는 제목처럼, 이 곡은 한 번 지나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전에 들었던 선율이지만, 어느 순간 다시 마음속에서 조용히 떠오른다.

아마 좋은 음악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우리 안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것. 청계천 백판으로 처음 들었던 그 음악이 아직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유도, 결국 그 그림자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