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대체로 자신에게 관대하다. 과거의 잘못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시간이 흐르면 불편했던 장면을 조금씩 덜어 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있었던 일과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달라진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오래전 친구들과 함께 겪었던 일을 다시 이야기했는데, 모두 같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각자가 기억하는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내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장면을 다른 친구는 전혀 다르게 회상했고, 나는 잊고 있던 일을 누군가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바로 그 불편한 지점을 파고드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과거를 다시 추적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지 묻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리뷰는 단순한 줄거리보다 기억과 책임의 문제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책 정보
- 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원제: The Sense of an Ending
- 저자: 줄리언 반스
- 옮긴이: 최세희
- 출판사: 다산책방
- 출간일: 2012-03-26
- 분량: 264쪽
- ISBN: 9788963708386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편집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과거의 저장소처럼 생각한다. 경험한 장면이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재생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기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건을 경험하는 순간부터 일부 장면과 감정만 선택적으로 남고, 훗날 그것을 떠올릴 때에는 현재의 판단과 지식이 다시 덧붙는다.
각자의 이야기를 모으면 당시의 상황이 조금씩 선명해지기도 한다.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완성한 그림조차 실제 과거와 완전히 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기억은 과거 그 자체라기보다 오랜 시간 여러 차례 편집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는 바로 그 편집된 기억 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은퇴 후 조용한 생활을 이어 가던 그는 뜻밖의 계기로 젊은 시절 친구들과 연인에 관한 기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고 믿는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접하면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린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었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에게 관대한 기억의 위험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토니가 젊은 시절 남겼던 글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다소 미숙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기록에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고 잔인한 감정이 담겨 있다.
토니는 단순히 어떤 사건을 잊은 것이 아니다. 당시 자신의 태도와 악의까지 순화해 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오랫동안 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사건의 인과관계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한 행동이 이후의 사건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토니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을 가능성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는 선명하게 기억하면서,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는 쉽게 축소한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모욕은 오래 남지만, 자신이 던진 날카로운 말은 한순간의 실수로 바뀐다. 토니의 기억에도 그런 자기방어가 작동한다.
그래서 토니는 불편한 인물인 동시에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자기합리화를 답답하게 바라보다가도, 어느 순간 독자는 자기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과거를 기억할 때 나에게 유리한 부분만 남겨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과 영화가 남기는 다른 뒷맛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추리소설처럼 과거의 빈칸을 하나씩 드러낸다. 하지만 진짜 관심사는 사건의 전모보다 토니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무너지는 과정에 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에게 불편한 결론 앞에서는 머뭇거린다.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태도를 먼저 문제 삼기도 한다.
동명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노년의 토니를 조금 다르게 보여준다. 영화는 현재의 가족관계와 일상을 더 많이 담고, 토니가 뒤늦게라도 변화하고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을 강조한다. 영화 속 토니에게는 아직 고칠 수 있는 현재가 남아 있는 듯하다.
반면 소설은 토니가 진실을 알게 된 뒤 정말 달라졌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가 반성과 회복에 무게를 둔다면, 원작은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지 좀 더 냉정하게 질문한다. 소설 속 토니에게 남는 것은 자신이 평생 믿어 왔던 이야기가 무너진 뒤의 혼란과 책임감이다.
나는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가 토니가 나이 들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고 느꼈다. 영화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소설은 그 가능성 앞에서도 쉽게 안심하지 않는다. 바로 그 냉정함이 원작의 힘이다.
읽고 난 뒤 남은 생각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면서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다. 누구도 과거를 완벽하게 되살릴 수 없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뒤에 숨어 자신의 잘못까지 지워 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책을 덮은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는다.
나는 지금까지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 혹시 나에게 불리한 장면은 지우고, 견디기 편한 이야기만 남겨 둔 것은 아닐까.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는 첫걸음은 기억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기억과 남겨진 흔적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도 그때 가능해진다.
마무리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짧지만 오래 남는 소설이다. 기억, 자기합리화, 노년의 회한, 그리고 책임의 문제를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읽는 동안에는 조용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자기 삶의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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