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의 첫 소설집 『약속의 세대』를 다 읽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한 편을 마칠 때마다 인물의 감정이 마음에 오래 남아 곧바로 다음 작품을 펼치기 어려웠다.
이 책의 사람들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은 채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통이 극적인 사건을 위한 장치로 소비되지 않기에 읽는 쪽에서도 잠시 멈출 시간이 필요했다.
한 달 동안 읽은 일곱 편

- 도서명: 『약속의 세대』
- 저자: 백온유
- 출판사: 문학동네
- 출간일: 2026년 3월 20일
- 쪽수: 352쪽
- ISBN: 9791141615819
예전에는 소설집의 수록작 가운데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약속의 세대』에는 이 제목을 가진 작품이 없다. 일곱 편에 흐르는 정서와 문제의식을 새로 압축한 이름이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듯 작품 속에는 헌신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고, 인내하는 만큼 찬란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믿음에 배반당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 언젠가 보답받고, 지금의 고통을 견디면 더 나은 미래에 닿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들은 자기 몫을 다했지만 가족과 사회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가까운 관계에서 받은 상처와 노력에 보상이 따르리라는 사회의 규칙이 무너진 경험이 한 제목 아래 겹쳐진다.
사고가 끝난 뒤에도 남는 자리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작품은 마지막에 실린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를 소재로 아이를 잃은 부모와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감당하는 시간을 다룬다.
사고는 특정한 날 발생하고 수습되지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끝나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그날 이후의 시간은 사고의 연장일 수밖에 없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때로는 안도보다 죄책감이 되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계속 묻게 한다.
나 역시 1999년 사고 직후 방송에서 본 장면을 기억한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소설을 읽자 당시의 화면이 다시 떠올랐다. 더 무거웠던 것은 그 뒤에도 비슷한 화재와 안전사고가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는 말도 사회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특히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소설집의 제목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약속을 믿었던 세대, 처음부터 믿기 어려운 세대
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삶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참고 견디며 역할을 다하면 언젠가는 그에 맞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고 배웠다.
내 세대에도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 사람은 많았다. 다만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취업하고 소득을 늘리고 집을 마련해 자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은 현실에 존재했다. 적어도 어제보다 내일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여지가 있었다.
지금의 20대와 30대에게 똑같은 약속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일해도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고, 오랫동안 저축한다고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도 약해졌다. 결혼과 출산, 노후 준비는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그들에게 조금 더 참고 견디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이미 효력을 잃은 약속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제도가 되지 못할 때
사회적 약속에는 책임과 보호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야 한다.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위로는 희생과 인내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약속이 힘을 가지려면 계약처럼 구체적이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책임지고,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보호와 보상이 따르는지 분명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뒷받침해야 약속은 현실에서 작동한다.
안전사고 뒤의 다짐도 점검 체계와 안전 기준, 책임 규정과 피해자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음 사고 전까지 반복되는 선언에 그친다. 청년에게 건네는 약속 역시 안정적인 노동조건과 주거 기회, 사회안전망과 공정한 규칙으로 증명돼야 한다. 개인에게 인내만 요구하고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인 요구다.
깨진 약속 이후에도 이어지는 일상
책 속 인물들은 깨진 약속과 사라지지 않는 아픔을 안은 채 관계를 맺고 자기 자리를 찾으며 때로는 또 다른 작은 약속을 만든다.
한 달 동안 일곱 편을 천천히 읽고 나니 제목이 처음과 다르게 들렸다. 『약속의 세대』는 자신의 몫을 다했지만 약속의 상대였던 가족과 사회, 국가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에 가까웠다.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약속을 건네기 전에 먼저 묻고 싶다. 그 약속을 어떤 법과 제도, 책임과 보상으로 지킬 것인가. 말로만 남은 약속은 더 이상 희망이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