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마르잔 사트라피의 그래픽노블 《페르세폴리스》를 빌려왔다. 이란 출신 프랑스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라는 정도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이란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미국과 무력 충돌 중인 나라, 핵개발 문제로 오랫동안 제재를 받은 나라, 아주 오래전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던 곳. 20세기 이후 이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는 거의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빈칸이 조금씩 채워졌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페르세폴리스》

- 지은이: 마르잔 사트라피
- 옮긴이: 박언주
- 출판사: 휴머니스트
- 출간일: 2019년 6월 3일
- 분량: 352쪽
- ISBN: 9791160802672
표지부터 흑백이다. 책 안의 그림도 단순한 선과 강한 명암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역사 이야기가 한 가족의 식탁과 학교, 거리와 파티 장면 속으로 들어오는 데 이 단순한 그림이 잘 어울렸다.
독재를 무너뜨린 뒤에도 자유는 오지 않았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에도 자유로운 민주국가가 아니었다. 팔레비 왕조는 비밀경찰을 통해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고 탄압했다. 왕정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혁명을 지지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왕정이 무너진 자리에 종교적 규율을 앞세운 체제가 들어섰다. 여성의 복장이 통제되고 학교와 사회생활 곳곳에 종교가 개입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재를 무너뜨렸는데 왜 더 자유로워지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왔다.
마르잔의 가족은 왕정도 이슬람 체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모는 딸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쳤고, 할머니는 자기 존엄을 잃지 말라고 했다. 마르잔이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란 배경에는 이 가족이 있었다.
동시에 그 환경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외 유학을 보낼 경제적 여유, 책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생활, 정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모, 돌아갈 가족이 있었다. 마르잔의 용기만 이야기하다 보면 이 조건을 놓치기 쉽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사람다운 마르잔
마르잔은 영웅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방황하고 거짓말을 하며, 때로는 비겁하게 행동한다. 우울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그런 모습 때문에 오히려 한 사람의 성장기로 읽혔다.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종교적 억압과 망명은 마르잔의 일상을 계속 흔든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다. 역사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한 사람의 성격과 선택 안으로 들어온다.
외부의 공격이 내부 정권을 강하게 만들 때
이란·이라크 전쟁 부분은 지금의 이란 상황과 겹쳐 보였다. 혁명 직후 혼란에 빠진 이란을 공격하면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이라크의 판단과 달리, 외부의 침략은 국민을 결집시켰다. 새 이슬람 정권도 전쟁을 거치며 권력을 강화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지금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감정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싫다고 해서 외국의 공격까지 환영하는 것은 아니니까. 외부의 적은 내부의 억압적 정권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페르세폴리스》를 읽고 나니 현재의 뉴스가 전보다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란을 한 덩어리로 보지 않게 됐다
이란은 아랍 국가라는 말로 묶을 수 없다. 다수는 페르시아계이고 공용어는 페르시아어다.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이 있던 지역이 7세기 아랍 세력의 정복 이후 이슬람화되었고, 16세기 사파비 왕조를 거치며 시아파 중심 국가가 되었다.
페르시아라는 오래된 정체성, 이슬람이라는 종교, 세속적인 도시문화와 국가의 종교적 통제, 서구에 대한 반감과 동경이 한 사회 안에 함께 있었다. 사트라피는 이를 거창한 설명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가족의 대화와 학교생활, 몰래 듣는 음악과 전쟁 장면으로 보여준다.
예전에는 뉴스에서 이란이 나오면 핵개발, 제재, 종교지도자 같은 단어부터 떠올렸다. 이제는 마르잔의 부모와 할머니 같은 사람, 음악을 좋아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정부와 국민은 같지 않다. 한 나라의 역사도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다. 《페르세폴리스》의 단순한 흑백 그림은 그 사실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정리하며 마르잔 사트라피가 2026년 6월 4일 파리에서 56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남편 마티아스 리파를 먼저 보낸 지 1년 남짓 지난 때였다. 가까운 이들은 그가 “슬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지만, 정확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로이터 보도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세상의 법칙과 쉽게 타협하지 않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공적인 예술로 꺼내놓았던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낯선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