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독후감: 흔들렸음에도 돌아왔기에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면 『인간실격』이 먼저 따라온다. 우울하고 자기파괴적이며 인간과 세상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작가라는 이미지도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달려라 메로스』를 읽고 기분 좋게 책을 덮은 경험이 조금 뜻밖이었다. 이 달려라 메로스 독후감에 남기고 싶은 것은 우정의 위대함보다, 흔들리는 인간도 끝내 약속을 선택할 수 있다는 밝은 결말이다.

『인간실격』의 작가가 내놓은 밝은 결말

메로스는 폭군 디오니시오스를 죽이려다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여동생의 결혼식을 치를 사흘을 달라고 요청하며 친구 셀리눈티우스를 인질로 남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친구가 대신 죽는다.

이야기의 뼈대는 오래된 전설에서 왔다. 고대 그리스의 다몬과 피티아스 이야기를 프리드리히 실러가 발라드 『인질(Die Bürgschaft)』로 썼고, 다자이는 이를 다시 소설로 옮겼다. 작품 끝에도 ‘고전 전설과 실러의 시에서’라는 출전이 적혀 있다. 여동생의 결혼, 인질이 된 친구, 범람한 강과 도적, 처형 시각에 쫓기는 귀환까지 주요 사건은 실러의 작품에 이미 등장한다.

그런데 같은 줄거리도 다자이의 손을 거치자 인간의 약함이 더 선명해진다.

흔들린 뒤 다시 달리는 인간

메로스는 돌아오는 길에 계속 막힌다. 강물이 불어나 다리가 사라지고, 도적의 습격을 받으며, 뜨거운 햇볕 아래서 체력마저 바닥난다. 결국 쓰러진 그는 친구를 버리고 자신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닿는다.

내게 메로스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영웅이라면 약속을 지켜도 교훈적인 우화에 머물렀을 것이다. 메로스는 도망치고 싶어 하고 포기하려 한다. 그런 자신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 달린다.

완벽해서 신의를 지킨 것이 아니다. 약한 인간이면서도 마지막 선택만큼은 약속 쪽에 놓았다.

서로 한 대씩 때린 이유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처형 직전에 만난 두 친구의 고백이다. 메로스는 달리는 도중 친구를 배신하려 했던 순간을 털어놓는다. 셀리눈티우스도 메로스가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잠시 의심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 한 대씩 때린 뒤 끌어안는다.

이 대목에서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신뢰를 너무 깨끗하고 이상적인 감정으로 꾸미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흔들렸고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잘못을 고백하고 책임을 치른 뒤 다시 서로를 믿는다.

완벽한 사람을 믿는 일은 어렵지 않다. 상대도 나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다시 믿는 일은 전혀 다르다. 『달려라 메로스』가 우정의 미담보다 인간의 신뢰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 이유다.

달리지 못한 작가가 만든 돌아오는 메로스

다자이와 친구 단 가즈오 사이의 ‘아타미 사건’을 함께 떠올리면 작품은 더 묘해진다. 숙박비가 모자라자 다자이는 돈을 구해 오겠다며 단을 여관에 남겨두고 도쿄로 떠났다. 기다리다 못한 단이 찾아갔을 때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와 장기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단의 회고 『소설 다자이 오사무』에 실려 널리 알려진 일화다.

현실의 다자이는 친구를 기다리게 했고, 소설 속 메로스는 끝내 친구에게 돌아왔다. 그가 현실에서 하지 못한 선택을 작품 안에서 완성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일화를 알고 나니 메로스의 실패할 듯한 몸부림과 가까스로 지킨 약속이 훨씬 다자이다운 장면처럼 느껴졌다.

오웰과 닮은 얼굴, 반대 방향의 질문

다자이의 사진을 보다가 조지 오웰과 조금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긴 얼굴과 마른 체형, 흑백사진 속 예민해 보이는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했다. 작품이 향하는 시선은 꽤 다르다. 오웰이 사회와 권력과 제도를 바깥에서 바라봤다면, 다자이는 자기 안을 끝없이 들여다본 작가에 가깝다.

오웰을 읽으면 세상은 왜 이런지 생각하게 된다. 다자이를 읽으면 나는 어떤 인간인지 묻게 된다. 『달려라 메로스』에도 같은 질문이 흐른다. 나는 끝까지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친구가 흔들리는 순간까지도 그를 믿을 수 있는가.

이번만큼은 다자이가 비교적 밝은 답을 내놓았다. 사람은 의심하고 포기하고 싶어 한다. 그래도 다시 달릴 수 있고, 끝내 돌아올 수 있다. 다자이의 작품을 읽고 이렇게 기분 좋게 책을 덮을 줄은 몰랐다.

완벽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흔들렸음에도 결국 돌아왔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