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에 출간된 이기호의 두 번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읽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책인데도 낡았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다. 소재는 여전히 기발했고, 우스운 이야기를 밀어붙이다가 문득 인물의 외로움과 궁핍을 드러내는 방식도 생생했다.
우물쭈물보다 갈팡질팡
제목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비튼 문장이다. 처음에는 왜 ‘우물쭈물’을 ‘갈팡질팡’으로 바꿨을까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인물들에게는 갈팡질팡이 더 정확한 말처럼 느껴졌다.
우물쭈물은 결정을 미루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가깝다. 갈팡질팡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상태다. 삶이 꼬이는 이유도 결정을 늦췄기 때문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흔들린 탓일 때가 더 많다.
소설 속 인물들도 좀처럼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다. 돈이 없고 생활은 불안정하며, 무엇인가 해보려 할수록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생이 일부러 이 사람들만 골라 골탕 먹이는 듯하다.
기괴한 설정 뒤에 보이는 궁핍
흙을 먹는 사람이 나오고,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등장한다. 설정만 보면 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을까 싶다. 막상 읽으면 그 기괴함 뒤에서 외로움과 결핍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황당해서 웃는다. 몇 장 지나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이기호는 궁핍한 삶을 비장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인물을 엉뚱하고 우스운 상황 속에 던져놓는다. 웃음이 슬픔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가까이 가는 통로가 된다.
여덟 번 얻어맞는 사람
마지막에 실린 표제작은 학창 시절부터 계속 운 나쁘게 얻어맞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일이 여덟 번이나 반복된다. 한두 번이면 불운이지만 여덟 번쯤 되면 인생이 한 사람을 정해놓고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일이 꼬이는 과정은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마음 편하게 웃기는 어렵다. 그 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왜 세상일은 나한테만 자꾸 이렇게 흘러갈까’라는 감정은 낯설지 않다.
책 끝의 ‘작가의 말’에는 이 소설집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소설을 실제 경험과 곧바로 겹쳐 읽을 수는 없다. 다만 그 말을 알고 나면 궁핍하고 갈팡질팡하는 인물들을 이전처럼 우스운 사람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워진다. 웃으며 지나온 장면 어딘가에 작가가 견딘 시간과 감정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아렸다.
폐허에서 자기 소설을 찾는 일
「수인(囚人)」도 오래 남았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한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한국인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난민처럼 살아가는 세상이다. 산속에 은둔해 소설만 쓰던 소설가는 폐허가 된 서울로 돌아온다. 자신을 받아줄 국가의 심사를 통과하려면 소설가였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
그는 시멘트로 폐쇄된 교보문고 아래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자신의 책을 찾으려고 곡괭이를 든다. 그 장면을 읽으며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쓴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에게 필요하기는 했을까.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소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설가라는 존재에 대한 자조와 불안이 짙은 장면이다. 동시에 아무 쓸모가 없을지라도 소설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도 보였다. 설정은 터무니없이 큰데, 작가가 끝내 들여다보는 것은 작고 초라한 한 인간의 마음이다.
웃음이 멎는 자리
이기호는 힘들었던 삶을 힘들었다고만 쓰지 않는다. 비참했던 일을 우스운 이야기로 바꾸어 다시 바라본다. 웃음은 그 시간을 견디고 자기 삶을 다시 말할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분명 웃긴 소설집이다. 다만 오래 웃고 있기는 어렵다. 가난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흔들리는 인물들이 완전히 남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재는 기발하고 감정은 낡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삶의 방향을 확신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한다. 한참 헤맨 뒤에는 나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것 같다.
“내 이럴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