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설은 줄거리보다 장면으로 오래 남는다. 어떤 소설은 문장보다 소리로 기억된다. 양귀자의 『모순』이 삶의 아이러니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독자를 흔든다.
내게 이 작품은 딥 퍼플의 「Child in Time」처럼 남아 있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감정이 높아지고, 마침내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터져 나오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리뷰』이면서 동시에, 한 장면과 한 음악이 오래 남긴 감각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 정보
- 제목: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저자: 양귀자
- 출판사: 쓰다
- 출간일: 2019-04-20
- 분량: 368쪽
- ISBN: 9788998441074
『모순』과는 다른 얼굴의 양귀자
양귀자의 소설을 말할 때 요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아마 『모순』일 것이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스테디셀러다. 나 역시 『모순』을 무척 좋게 읽었다.
하지만 양귀자의 소설 가운데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의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모순』이 가족과 사랑, 결혼, 행복과 불행 같은 삶의 문제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소설이라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훨씬 거칠고 도발적이다.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깊은 분노를 품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남성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 백승하를 납치한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히 파격적인 설정이다.
강민주가 납치한 대상은 단순한 한 명의 남자가 아니다. 대중이 사랑하고, 여성들이 동경하며, 사회가 이상적인 남성으로 만들어낸 스타다. 1990년대 초에 이런 이야기가 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시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 같다.
공감과 불편함 사이에 선 인물, 강민주
이 작품은 여성 문제를 조용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직접 분노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강민주는 모범적인 피해자도 아니고, 독자가 편안하게 응원할 수 있는 인물도 아니다. 그녀의 분노는 이해되지만, 그녀의 행동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다. 공감하면서도 불편하고, 비판하면서도 쉽게 외면할 수 없다.
바로 그 복잡함 때문에 이 소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좋은 소설이 언제나 편안한 인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해하고 싶지만 끝내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과 구조를 마주하게 만든다.
강민주는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독자를 안전한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독자는 그녀를 판단하려 하지만, 판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분노의 깊이를 보게 된다.
딥 퍼플의 「Child in Time」처럼 남은 장면
이 소설에서 내게 유독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딥 퍼플의 「Child in Time」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장면이다.
세월이 지나 소설의 세세한 내용은 조금씩 흐려졌지만, 이상하게도 이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Child in Time」은 조용하게 시작한다. 그러다 음악은 조금씩 높아지고, 긴장감이 쌓이고, 이언 길런의 목소리는 마침내 노래라기보다 비명과 절규에 가까워진다.
내게는 그 음악이 강민주라는 인물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그녀의 분노 역시 차분하게 정리된 주장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쌓이고 눌려 있던 감정이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폭발한 것에 가깝다.
그래서 강민주가 「Child in Time」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장면은 단순히 소설 속에 유명한 록 음악이 등장한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마치 이 소설 전체의 정서를 음악으로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게 『모순』이 문장과 생각으로 남은 소설이라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장면과 소리로 남은 소설이다. 그 소리는 딥 퍼플의 「Child in Time」이다.
1990년대의 강렬한 페미니즘 소설
이 작품을 다시 떠올리면서 우리나라 페미니즘 소설의 흐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다. 훨씬 이전부터 여성의 자각과 해방을 다룬 작가와 작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의 대중 독자들에게 여성의 억압과 분노를 이처럼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보여준 작품은 흔하지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이 소설은 여성의 고통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강민주는 스스로 행동한다.
물론 그 행동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단순한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자는 끊임없이 강민주를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그녀와 거리를 두게 된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1990년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과 남성, 대중문화와 스타, 욕망과 폭력에 대한 논쟁이 훨씬 거세진 지금이라면 이 작품은 더 복잡한 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최진실이 연기한 강민주
이 작품은 1994년 최진실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최진실이 강민주 같은 복잡하고 과격한 인물을 연기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을 떠올리면 소설과 함께 최진실이 출연한 영화가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당대 최고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은 이 작품이 당시 얼마나 큰 관심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다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이야기다. 오히려 지금이라면 더 큰 논쟁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스타 이미지, 남성성, 여성의 분노,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구조가 모두 이 작품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읽고 난 뒤 남은 생각
양귀자의 『모순』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모순』에는 사랑과 결혼, 가족과 삶, 행복과 불행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읽고 난 뒤 자신의 삶을 오래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반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에 남는다. 『모순』이 삶의 아이러니를 조용히 바라보게 한다면, 이 소설은 독자의 귀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불편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처음에는 조용하다. 하지만 점점 높아지고 거칠어지다가 마침내 절규한다. 그리고 음악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소리가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내게 그런 소설이었다.
마무리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오래 남는 소설이다. 양귀자의 『모순』을 좋게 읽은 독자라면, 같은 작가가 전혀 다른 결로 던진 이 강렬한 질문도 한 번쯤 마주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