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보고서를 AI에게 넣고 “핵심만 정리해줘”라고 하면 요약본이 나온다. 나 역시 글쓰기와 앱 개발, 자료 조사에 AI를 자주 쓴다.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을 읽으며, 편리함을 누리는 내 선택도 돌아보게 됐다.
이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무엇은 직접 읽을 것인가였다. 원제는 『Reader Bot: What Happens When AI Reads and Why It Matters』다.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

- 저자: 나오미 배런
- 옮긴이: 전병근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원제: Reader Bot: What Happens When AI Reads and Why It Matters
읽기를 넘기는 파우스트의 거래
읽기를 AI에게 맡기는 선택을 ‘파우스트의 거래’에 비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을 아끼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대신, 직접 읽으며 생각하는 과정을 얼마나 내주고 있는지 묻는다.
사람은 읽으면서 앞의 내용을 기억하고 지금의 문장과 연결한다. 저자의 주장을 의심하고, 소설 속 인물의 마음을 짐작한다. 요약으로 핵심을 알아도 이 과정을 그대로 경험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AI를 쓰지 말자는 주장보다 읽기를 어디까지 맡길지 선택하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글은 많아지는데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면
매슈 커센바움 교수가 제시한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라는 개념도 남았다. 생성형 AI가 글을 쏟아내는 상황을 가리키는 이 말에서, 나는 AI가 쓰고 다른 AI가 읽는 미래까지 떠올렸다.
보고서를 작성시키고, 긴 자료를 요약시키고, 비교와 평가도 맡긴다. 각각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나도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 선택들이 모여 인간은 마지막 결과만 소비하게 된다면 조금 섬뜩하다.
글이 많아지는 것과 사람이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아내에게 건넨 농담과 소리한편
책에는 독서 같은 인지 활동과 치매 증상 발현 시점의 관계를 다룬 연구도 소개된다. 독서가 치매를 예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집중하고 기억하고 추론하는 활동이라는 설명은 반가웠다.
그래서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치매 안 걸리려면 책 좀 읽어.”
곧이어 “책 읽기 싫으면 소리한편에서 고전이라도 들어”라고 덧붙였다.
최근 내가 출시한 소리한편은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문학을 낭독으로 듣는 앱이다. 책에서도 오디오북이 잠깐 언급된다. 눈으로 읽기와 귀로 듣기가 같은 경험은 아니겠지만, 작품의 내용을 따라가고 상상하는 일은 여전히 듣는 사람이 한다. 내가 소리한편을 떠올린 이유도 그 과정에 있었다.
좋아서 고른 소설까지 요약할 필요는 없다
수십 페이지의 업무 자료를 파악하거나 여러 정보를 비교할 때는 앞으로도 AI를 쓸 것이다. 다만 내가 좋아서 고른 소설까지 요약시키고 읽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고, 이해되지 않아 되읽고, 잠깐 생각하다가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독서에 포함된다. 『읽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아낀 시간뿐 아니라 건너뛴 과정도 돌아보게 했다.
무엇을 직접 읽을지는 의식적으로 선택하려 한다. 적어도 책 한 권 정도는 말이다.